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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코어 음악 (하이퍼팝 반발, 도파민 중독, 트렌드 수명)

by jiggy2191 2026. 2. 22.

솔직히 2019년만 해도 주변에서 이런 음악 듣는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봤습니다. 저도 처음 들었을 때 "이게 음악이야?" 싶었거든요. 근데 요즘 보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틱톡 켜면 나오고, 유튜브 쇼츠에도 깔리고, 심지어 제 주변 친구들도 이런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더라고요. 디지코어라는 장르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퍼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 장르는, 하이퍼팝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습니다. 2020년 코로나 시기, 집에 갇힌 10대들이 디스코드 서버에 모여 만들어낸 소리가 지금의 트렌드가 된 겁니다.

하이퍼팝을 거부한 디지털 키즈들

디지코어를 이해하려면 먼저 하이퍼팝부터 알아야 합니다. 소피와 에이지쿡이라는 영국 프로듀서들이 시작한 하이퍼팝은 팝의 구조를 따르되, 오토튠을 과하게 걸고 신디사이저를 왜곡시켜 인공적인 느낌을 극대화한 음악이었습니다. 특히 소피는 트랜스 여성으로서 기존 음악으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보컬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냈죠.

에이지쿡은 2013년 PC뮤직이라는 레이블을 만들어 이 사운드를 함께 탐험할 동료들을 모았습니다. 컴퓨터 한 대로 방에서 만든 음악도 충분히 세련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실제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낸 거였죠.

근데 문제는 이 하이퍼팝이 너무 빠르게 주류화됐다는 겁니다. 스포티파이가 2019년에 하이퍼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이 장르는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대형 레이블들이 하이퍼팝 아티스트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음악이 급격하게 상업화된 겁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하이퍼팝이 뭐냐"고 물을 정도로 근본 없는 용어였는데 말이죠.

코로나가 만들어낸 새로운 소리

2020년, 코로나로 집밖을 못 나가던 시기에 15세에서 18세 사이의 키즈들이 디스코드 서버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게 디지코어 탄생의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은 방에서 각자 만든 음악을 서로 공유하고 평가하고 협업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을 디지코어라고 불렀죠.

이들이 하이퍼팝을 거부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우린 팝을 만들지 않는다. 우린 인터넷에서 만난 디지털 키즈들이고, 인터넷에서 본 이상한 소리로 음악을 만들 뿐이다." 실제로 이들은 스크릴렉스의 폭주하는 EDM, 브레이크코어의 정신없는 변박, 드레인갱과 사운드클라우드 랩의 우울한 에너지를 모두 흡수했습니다.

제가 처음 디지코어를 들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그 극단적인 매시업 방식이었습니다. 유튜브 탭을 여러 개 켜서 동시에 듣는 것처럼, 온갖 샘플과 전자음이 프레임 단위로 충돌합니다. 하이퍼팝이 그래도 팝의 달달한 버블껌 테이스트를 유지했다면, 디지코어는 그 버블껌을 완전히 거세해버렸습니다. 유년기부터 쇼츠와 틱톡을 보며 도파민에 절여진 세대가 만든 소리답게, 자극의 강도가 몇 배는 더 세죠.

제인리무버라는 2003년생 트랜스 여성 아티스트가 이 장르의 아이콘입니다. 이 분은 앨범을 낼 때마다 예명을 바꾸는데, 제가 보기엔 일종의 탈피 같습니다. 계속 벗어나며 자신을 찾아가는 거죠. 2021년 튜닉이라는 앨범으로 디지코어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이후 다리아코어라는 극단적인 매시업 스타일로 또 한번 장르의 경계를 밀어냈습니다. 올해 나온 리벤지시커즈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앨범이라고 본인이 직접 설명했는데, 실제로 들어보면 그 파괴적인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도파민 음악의 짧은 수명

저는 이런 음악들을 개인적으로 도파민 음악이라고 부릅니다. 정신없고, 강한 디스토션이 걸려있고, 쉽게 피로감을 유발하는 음악들 말이죠. 근데 이런 음악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트렌드가 짧다는 겁니다.

사람은 단 걸 먹으면 쉽게 물리듯이, 강하고 어지러운 사운드는 귀에 많은 피로감을 줍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이런 음악 좋다고 하는 사람 거의 못 봤는데, 지금은 틱톡만 켜도 쏟아집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렇게 급격하게 뜬 트렌드는 꺾이는 것도 빠릅니다.

실제로 디지코어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샘플링 저작권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옛날 명곡의 멜로디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게 이 장르의 작동 원리인데, 장르가 커질수록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겠죠. 제인리무버도 리벤지시커즈를 만들 때 본인 곡을 본인이 샘플링한 게 저작권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스템서울 같은 아티스트들이 메이플스토리 BGM이나 2010년대 가요를 샘플링해서 한국적인 디지코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근데 이분들도 불법 샘플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저는 이 정도는 장르적 허용으로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체급이 커지면 관계자들이 나서서 곡을 내리라 하거나 수익 쉐어 요구할 겁니다.

결국 음악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모든 게 빨라지고 정신없어진 이 시대에 디지코어가 딱 맞는 옷처럼 느껴졌던 건 우연이 아닙니다. 하지만 트렌드는 항상 변하고, 디지코어도 언젠가 다른 이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이퍼팝이 그랬듯이 말이죠. 지금 이 소리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제인리무버의 리벤지시커즈나 루시베드록의 언뮤직 같은 앨범을 미리 받아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음악 평론이 아닙니다.


참고: https://youtu.be/RYtxlX2n8Bc?si=GVAAbqsRMbTuAJ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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